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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지역권

 

 

 □ 개요


1950년대초전후 복구건설시기와 대자연개조사업이 진행되던 어진돈 관개공사와 평남관개공사에 앞서 정방산 일대와 석천산일대에서 고인돌이 조사 발굴되었다. 평양을 중심으로 대동강 유역일대에 많은 고인돌이 분포되었는데 이지역의고인돌은 우리나라 고인돌 분포 관계에서 제일 밀도가 높은 것으로 보인다. 평양을 중심으로 발생한 고인돌은기원전 3000년 전반기에는 청천강 아남, 한강 이북 지역, 동쪽으로는 북대봉 산줄기 서쪽의 북조선일대에 분포되어 있다가 기원전3000년 후반기를 전후하여 요하유역, 길림, 장춘지구, 남부조선으로널리 보급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고인돌은 평양일대,함경남북도,양강도,강원도일대의 고인돌이 20,000기이상 조사 발굴되었다.


 탐방


강동 문흥리 고인돌


평양시강동군 문흥리의 구릉지대에 위치한 문흥리 고인돌군은 총 20여기로, 이 가운데 5기만이 발굴 조사되었다.1호 고인돌은 발견 당시 덮개돌이 없었으며, 받침돌은 훼손되어 깨져있었다. 하부구조로 무덤방이 발견되었는데,규모는 길이 160cm, 폭 100cm, 깊이 80cm에 달한다. 탁자식 고인돌로 추정된다. 2호 고인돌은주변 지역보다 40cm 높게 터를 돋구어 묘역시설을 만든 뒤 고인돌을 축조하였다. 이렇게 단을 만든 다음고인돌을 만든 경우는 요령 지역의 백점자, 석붕용, 소관둔 고인돌 등이 있다.

2호고인돌의 덮개돌 재질은 점판암이며, 규모는 길이 410cm, 폭 300cm, 두께 30cm에 달한다. 동쪽받침돌은 제대로 서 있지만, 서쪽 받침돌은 동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고인돌 전체가 기운 느낌을 준다. 하부구조로무덤방이 발견되었다. 3호 고인돌은  2호 고인돌에서 북쪽으로 9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뚜껑돌은 깨져 없어지고, 서쪽과 남쪽 받침돌만 흙무지 위에 드러난 채로 발견되었다. 무덤방의 규모는 길이200cm, 폭 180cm, 두께 210cm로, 안에서 사람 손가락뼈 10여점과 부러진 돌도끼 1점이 나왔다.



개천 묵방리 고인돌


묵방리고인돌군은 평남 개천군 까치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탁자식과 개석식 고인돌 40여기가 분포하고 있는데,마을 사람들을 이를 ‘되무덤’이라고 부른다. 고인돌 외에도 돌무지무덤 30여기와 역사시대 무덤 유적들이함께 발견되었다.

발굴된주요 고인돌로는 2호와 4호, 17호, 20호 고인돌 등이 있다. 2호 고인돌은 마을 부근에 있으며, 덮개돌의규모는 길이 270cm, 폭 220cm, 두께 20cm~28에 달한다. 무담방의 세 벽은 벽돌 크기의 돌을쌓아 만들었으며, 너머지 남벽은 판석으로 세웠다. 무덤방의 규모는 길이 179cm, 폭 80cm, 두께30cm이다. 4호 고인돌의 덮개돌은 길이 290cm, 폭 280cm, 두께 25cm에 달한다. 무덤방의3벽은 2호와 마찬가지로 돌을 쌓았고 나머지 한 벽은 판석 2장을 이어 세워 놓았다. 무덤방 옆에는 돌을쌓아 보강하였다. 무덤방의 규모는 길이 190cm, 폭 103cm이다. 17호 고인돌은 까치산의 기슭에위치하고 있다. 덮개돌은 타원형이며, 길이 330cm, 폭 290cm, 두께 32cm에 달한다. 무덤방의3벽은 편암을 쌓아 만들었다. 출토된 유물로는 반달돌칼이 있다. 20호 고인돌에서는 사지뼈와 어금니가 발견되었다.



안악 노암리 고인돌


노암리고인돌군은 황남 안악군 노암리 화평마을의 남쪽에 위치한다. 덮개돌의 규모는 길이 778cm, 폭 572cm,두께 70cm로 북부지방에서 조사된 탁자식 고인돌 가운데 큰 편에 속한다. 서쪽 받침돌과 동쪽 받침돌이남아 있으며, 남쪽 받침돌은 일부만 땅에 박혀 있다. 하부구조로 무덤방이 발견되었다. 무덤방의 규모는 길이252cm, 폭 170cm, 두께 270cm이며, 내부에서 돌끌, 돌화살촉, 가락바퀴 등의 석기와 토기조각들이 발견되었다. 돌끌은 부러진 상태로 출토되었는데, 남은 길이는 4.7cm, 너비 1.8cm이다.가락바퀴는 지름 6cm짜리로, 가운데 0.8cm 크기의 구멍이 뚫려 있다.




 

 

 

 


연탄 오덕리 고인돌


황북연탄군 오덕리에는 송신동, 평촌, 석장골, 화산동 마을의 구릉지대에 다수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송신동을중심으로 21기가 발굴되었지만, 일부는 파괴가 심하여 전체적인 성격을 알 수 있는 것은 15기에 불과하다.이 외에도 집터 1기와 돌돌림유구 1기가 발견되었다.

평촌마을은 송신동에서 1km 떨어진 강 건너 마을이다. 강 옆의 들판에서 50여기의 고인돌이 발견되었다. 이가운데 발굴 조사된 것은 5기 뿐이다. 9호 고인돌은 개석식으로 둘레에 돌을 쌓아 묘역시설을 만들었다.덮개돌은 훼손되었으며, 무덤방의 양쪽 긴 벽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긴 벽을 이룬 넙적한 돌의 두께는 30cm로두터운 편이다. 10호와 호는 같은 돌무지에 함께 자리하고 있다. 10호는 평촌 고인돌군의 중심에 위치하고있는데, 덮개돌의 규모는 길이 230cm, 폭 180cm, 두께 30cm에 달한다. 무덤방은 흙으로 약간돋우고 그 위에 돌널을 만들었다. 고인돌 내부에서 토기와 화살촉, 돌도끼 등이 발굴되었다.

석장골은강 옆의 구릉지대에 위치한 곳으로, 2기의 고인돌이 발견되었다. 석장골 1호 고인돌의 덮개돌의 규모는 길이440cm, 폭 240cm, 두께 40cm이다. 하부구조로 무덤방이 발견되었으며, 무덤방 서쪽 칸에서 사람의허벅지뼈가 나왔다. 2호 고인돌은 1호 고인돌처럼 주변에 흙더미가 쌓여 있었다. 무덤방의 크기는 길이 120cm,폭 70cm, 깊이 60cm에 달한다.

송신동고인돌군은 송신동 마을 북쪽에 있는 담터벌에 위치해 있다. 1지점에 27기, 2지점에 6기, 3지점에 8기등 41기가 발견되었다. 이 가운데 발굴된 것은 12기 뿐이다.

1호고인돌은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덮개돌이 크고 손질이 많이 되어 있다. 덮개돌의 규모는 길이 830cm,폭 630cm, 두께 50cm이다. 무덤방을 이룬 동,서,북벽은 너비 30cm 정도의 기초 홈을 파고 넙적한돌을 세운 다음 진흙과 막돌을 섞어 다짐을 하였다. 4호 고인돌 역시 동서 받침돌과 북쪽 받침돌을 세우기위한 기초 홈을 판 뒤 벽을 세웠다. 남쪽편의 받침돌은 넘어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무덤방의 크기는 길이190cm, 폭 175cm, 깊이 175cm이다. 5호와 6호 고인돌은 뚜껑돌 밑에 덮개돌이 있다. 20호와22호 고인돌은 31호와 마찬가지로 무덤칸에 칸막이 시설이 있는 구조이며, 칸막이 구획 가운데 한 곳에만바닥에 막돌을 깔아 높게 만들었다.

고인돌에서출토된 유물로는 10호에서 돌단검, 5호에서 돌도끼와 토기 조각, 22호에서 사람뼈와 조가비 등이 있다.


은율 관산리 1호 고인돌


황남은율 관산리에 위치한 이 고인돌 유적은 바다가 보이는 해발 80m의 산마루에 자리하고 있다. 덮개돌은 장방형으로규모는 길이 875cm, 폭 450cm, 두께 31cm에 달한다. 받침돌은 안기울임을 하고 있어 안정적인구조를 보여준다. 무덤방의 크기는 길이 330cm, 폭 140cm, 깊이 215cm이며, 바닥은 맨바닥이다.

관산리고인돌은 바닥에 65cm 가량 흙을 돋우어 단을 만든 뒤에 세워졌는데, 이러한 형태는 강동 문흥리 2호고인돌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은천 약사동 고인돌


약사동고인돌은 탁자식 고인돌로 황남 은천군 덕양리 약사동에 자리하고 있다. 덮개돌은 파괴되어 발견 당시 찾아볼 수 없었으며, 남쪽 받침돌만 남아 있었다. 발굴 결과 북쪽 받침돌은 땅 위에 드러난 부분만 파괴되었고밑 부분은 제자리에 있음이 밝혀졌다.

무덤방의규모는 길이 185cm, 폭 285cm, 깊이 23~25cm이다. 무덤방의 바닥은 숯을 먼저 깔고 그 위에길쭉한 강돌을 1~2단 깐 다음 넙적한 돌 1장을 얹었다. 무덤방 안에서 청동화살촉, 돌화살촉, 돌도끼등이 발견되었다. 청동 화살촉은 끝이 뾰족하고 가운데 등이 있으며, 양쪽에 예리한 날이 있는 형태이다.돌화살촉은 푸른색을 띤 점판암으로 만들어 졌는데, 마름모꼴 모양이다. 돌도끼는 무덤방의 북쪽 모서리에서찾았는데, 차돌을 갈아 만든 것으로 보여진다.


황주 침촌리 고인돌


침촌리고인돌군은 황북 황주군 침촌리의 정방산 서북쪽 기슭과 들판에 위치하고 있다. 침촌리 유적은 긴동, 천진동,극성동, 신대동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29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긴동고인돌은 정방산 서북쪽 서남향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데, 총 8기로 남북방향으로 배열되어 있다. 1호 고인돌은탁자식이고 나머지는 개석식이다. 3,4,5,6,7호 고인돌이 발굴 조사 되었다. 고인돌 뚜껑돌 밑에서 돌무지가발견되었는데, 돌무지 안에 무덤방이 축조된 형태이다. 3호 고인돌의 무덤방은 길이 100cm, 폭 35cm,깊이 50cm에 달한다. 밑에 작은 조약돌을 한 벌 깔고 그 위에 판돌을 덮었다. 긴동 고인돌에서 출토된유물로는 돌자귀, 돌화살촉, 돌단검 등이 있다.

천진동에는30m의 범위에 6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북쪽에 1,2,3호가 배열되어 있으며, 남쪽에 4,5,6호가위치해 있다. 북쪽의 것은 개석식 고인돌이며, 남쪽의 것은 하나의 돌무지 안에 묘역을 이루고 있는 형식이다.

극성동고인돌은 천진동과 마찬가지로 독립된 고인돌과 하나의 돌무지 안에 묘역을 이루고 있는 것 두 가지 형태로나뉜다. 6,7,8,9호가 하나의 돌무지 묘역 안에 위치해 있다. 뚜껑돌 밑에는 각각 무덤방이 하나씩 있는데,6호와 7호 고인돌은 판돌로 무덤방 짜고 그 양옆에 두께 20~30cm 정도의 두터운 고인돌을 덧세워 보강하였다.

신대동에는사방 50m 범위 안에 11기의 고인돌이 군을 이루고 있다. 개별 무덤 구역을 가지고 있는 것도 있고,2,3,4호와 같이 공동 돌무지 묘역을 가지고 있는 것도 있다. 발굴 된 2호 고인돌을 살펴보면 덮개돌은둥근 모양으로, 암질은 화강암이다. 덮개돌의 규모는 길이 270cm, 폭 200cm, 두께 50cm이다.무덤방의 바닥은 막돌을 깔았다.


 

 

우리고장 고인돌

  

 ▶ 우리고장고인돌 참고자료

 

단행본

○ 고인돌 이야기: 이영문, 다지리, 2001

○ 고인돌과 거석문화(1) : 동아시아, 변광현, 미리내, 2000

○ 고인돌과 거석문화(2) : 세계, 변광현, 미리내, 2001

○ 고조선지역의 고인돌 연구: 하문식, 백산자료원, 1999

○ 우리의 선사 문화: 이융조, 우종윤, 길경택, 하문식, 윤용현, 지식산업사, 1994

○ 한국 지석묘(고인돌)유적 종합조사 연구 (1) 서울대학교 박물관 편 문화재청, 1999

○ 한국 지석묘(고인돌)유적 종합조사 연구(2) 서울대학교 박물관 편 문화재청, 1999

○ 조선의 고인돌무덤연구: 석광준, 중심 2002

 

기타

○ 각시군 송부자료(2002.9. 고인돌사랑회 공문회신)

문화재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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