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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운동의 선구자, 판디타 라마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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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띠 미션 자원봉사자와의 만남

몇 해 전, 서울에서 대학을 막 졸업한 여학생을 델리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 학생은 마하라슈트라 주에 있는 푸네의 ‘묵띠 미션(Mukti Mission)’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왔는데, 그 체험기가 내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그 학생은 묵띠 미션 내에 있는 어린이 학교에서 교사로 3개월을 보내고 왔다. 그곳에는 세계 각국과 인도 전역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여러 기구한 사연 때문에 인도 전역에서 모인 과부와 고아들, 맹인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한 곳에서 여성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소규모 공장이나 가내수공업 훈련이 한창일 때, 다른 한 곳에선 아이들을 위한 학교 수업이 진행된다. 그리고 부지 내의 병원은 환자들을 치료하고, 장애인들을 돕는 재활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곳이다. 또한 출판과 홍보, 행정 업무를 위해 따로 전문가 그룹이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묵띠 미션은 기본적으로 공동체 생활을 하는 숙박 시설이 구비되어 있어서 자신처럼 자원봉사자들이 먹고 자면서 생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녀가 인도의 소외받고 무시당하는 여성과 아이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뿌듯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학생과 헤어지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인도 역사 속에 남성 주도가 아닌 여성 스스로의 힘으로 여성 운동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감당했던 인물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다음에 소개할 인물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바로 묵띠 미션을 창시한 ‘판디타 라마바이(1852~1922)’다.

라마바이의 유년기와 판디타로 살아가기

라마바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녀의 유년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녀의 유년기 가족사는 한마디로 불행했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조실부모(早失父母)하고 가난했던 삶을 살았다. 브라만 중에서도 상류에 속하는 치트파완(Chitpawan) 브라만 출신인 아버지 아난트 샤스트리 동그레(Anant Shastri Dongre)는 19세기의 전형적인 브라만 학자였다. 경전을 가르치는 일을 주로 했던 그에게 주 수입원은 사원에 찾아오는 신도들의 시주 정도뿐이어서 늘상 가난한 삶을 살았다. 일찍이 상처하고 나이 어린 둘째 부인 락슈미바이와 재혼을 해서 딸과 아들을 한 명씩 낳았는데, 그 딸이 바로 라마바이다. 그러나 라마바이가 16세 되던 해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몇 개월 차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라마바이 남매는 졸지에 고아가 되어 버린 것이다.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으로 라마바이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산스크리트어와 힌두교 경전인 《푸라나각주1) 》를 가르쳤는데, 이것이 그녀에게 중요한 유년기 경험이 되었다. 그녀의 어머니 락슈미바이도 남편에게 산스크리트어와 푸라나 교육을 받을 정도로 라마바이의 아버지 아난트는 일면 개혁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여성이기에 배움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당시 풍토에 비추어 보면 상당히 선구자적인 행동이었던 것이다. 위에 언급한 두 가지가 훗날 라마바이로 하여금 인도 전역에 남녀평등을 향한 사회개혁에 선구자로 나설 수 있게 한 배경이 되었다.

라마바이는 16세 때 고아가 되어 삶의 새로운 출발을 해야 했다. 그녀가 배운 것은 단지 아버지에게서 배웠던 《푸라나》 경전을 산스크리트어로 암송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인도의 여러 지역을 떠돌며 푸라나를 암송하고 받은 시주로 가까스로 끼니를 때우며 살았다. 그런 라마바이를 보는 사회의 시선은 차가움보다 신기함에 가까웠다. 젊은 여사제가 성스러운 언어 산스크리트어를 잘하는 것도 신기하고, 그 언어로 쓰인 푸라나를 암송하면서 대중들을 가르치고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힌두교 내의 사회개혁가들 눈에 비친 라마바이는 자신들의 개혁 운동에 힘을 실어줄 여성 지도자가 되기에 손색이 없어 보였다.

라마바이가 콜카타에 도착했을 때는 19세기 중후반으로 ‘벵골 르네상스(Bengal Renaissance)’라 일컬을 정도로 콜카타는 이미 개화의 중심지가 되어 있었다. 라마바이는 그곳 힌두 개혁파 지도자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예컨대 브라모 사마즈(Brahmo Samaj)라는 힌두교 개혁 단체의 지도자인 케샵 찬드라 센(Keshab Chandra Sen)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푸라나》뿐만 아니라, 다른 힌두교 경전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판디타 라마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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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인이 된 라마바이와 영국 생활이 가져다준 전환점

그러나 라마바이는 힌두교의 위계질서에 얽매이길 원치 않았기에 22살이 되던 해에 수드라 출신 벵골의 변호사 마다비(Madhavi)와 결혼했다. 둘 사이에 예쁜 딸도 태어나 행복했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남편 마다비가 콜레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미망인이 되어 어린 딸과 함께 남겨진 라마바이에게 현실은 가혹했다. 힌두교 관습에 의하면, 브라만 미망인은 머리를 밀고 흰 사리를 입고서 미망인들이 모여 사는 격리된 장소에서 지내야 했다. 남편을 일찍 죽게 한 죗값을 치러야 했던 것이다. 여기서 그녀는 힌두교에 대한 믿음이 무너졌다.

인도에 있는 영국인 선교사들과 접촉하면서부터 미망인 라마바이에게 전환점이 찾아왔다. 그전에도 남편 마다비의 서재에 있는 〈누가복음〉을 읽거나 선교사들과 대화한 적이 있지만, 이때만큼 기독교에 대해서 열려 있지는 않았다.

1883년 여성 교육과 사회개혁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그녀는 영국으로 건너가 대학에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친구가 된 몇몇 선교사들의 도움을 얻어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그녀는 매춘 굴에서 전전하던 여성들의 자활을 돕는 기독교 기관을 방문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영국 사회와 기독교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고, 남녀평등과 계급평등을 실천했던 예수에 대한 매력에 빠져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다.

여성들을 위한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다

1889년 인도로 돌아온 그녀를 향한 사회의 시선은 더욱 따가워졌다. 미망인 신분으로 사회개혁운동을 하는 것도 꼴사나웠는데, 이제는 브라만의 영광을 내던지고 기독교로 개종을 했으니 반갑게 맞이할 리가 없었다. 힌두교 사회개혁가들조차 그녀의 개종을 비판하는 입장에 있었다. 단지 하층민의 ‘마하트마’ 조티라오 풀레만이 그녀를 옹호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라마바이는 굴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실천해 나갔다. 마하라슈트라 주의 푸네에서 ‘샤라다 사단(Sharada Sadan)’을 세워 미망인들과 고아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들을 위한 공동체를 만든 것이다. 미망인들과 고아들을 교육시켜 자립하게 하는 이 사업은 이후 ‘라마바이 묵띠 미션(Ramabai Mukti Mission)’으로 발전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현재 푸네를 중심으로 미국,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에 지부를 두고 있는 국제적인 단체로 발전했다.

라마바이 묵띠 미션이 지니는 역사적 의의는 단지 여성 운동을 조직적으로 추구했다는 점에 있지 않다. 계몽된 인도 여성 한 사람이 같은 인도 여성들을 위해 단체를 설립, 운영, 확장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가 있다. 그 당시만 해도 인도 여성의 손으로 운영되는 여성 학교, 병원, 직업 훈련원, 미망인의 집 등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대부분이 힌두나 무슬림 남성 개혁가나 서구 선교사들에 의해 운영되었다. 인도 정부는 이를 기리기 위해 1989년 라마바이를 기념한 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그녀는 《성경》의 원어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배워서 마라티어각주2) 로 《성경》을 번역할 정도로 대단한 신앙심과 열정이 있었고, 평생 기독교인으로 살다가 죽었다. 하지만 서구식 기독교나 전통적인 사제 중심의 기독교를 배격했다. 전자는 서구 문화 자체가 기독교로 인식되는 문제가 있었고, 후자는 교회 내에서 신분과 남녀 차별이 존재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마바이를 평가할 때 기독교를 받아들여 서구화된 여성 운동가라기보다 기독교를 인도화시킨 여성 운동가라고 보는 편이 더 합당하다.

인도 여성을 살펴보면 인도의 반을 이해하게 된다

인도를 여행하게 되면, 푸네를 꼭 한 번 가 보기를 권한다. 시간이 된다면 자원봉사도 하면서 말이다. 인도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아는 것은 곧 인도의 반을 이해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인도 여성을 위한 봉사활동이 인도 사회를 이해하는 좋은 통로가 될 것이다.

21세기 인도 사회에서 여성들은 여전히 차별의 굴레 속에서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역동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중산층을 중심으로 도시 단위에서 조직적인 남녀평등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2012년 12월 델리 시내버스 안에서 대낮에 한 여학생이 집단 성폭행을 당해 목숨을 잃은 사건이 좋은 예다. 이 사건이 인도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의식 있는 중산층이 중심이 되어 인도 전역에서 촛불 시위와 함께 데모가 몇 달 동안 지속되었다. 근래에 보기 드문 사회 현상이다. 여성을 위시해 남성들도 성폭력 근절과 남녀평등을 외치고 있다.

이런 활동이 사회 변화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미지수지만, 제2 내지 제3의 판디타 라마바이가 나와서 여성이 더 평등한 세상이 오길 기대해 본다.

[TIP]
• 푸네의 라마바이 묵띠 미션 웹사이트(/siteagent//www.mukti-mission.org)를 방문해 보자. 그곳에서 정보를 얻어 직접 자원봉사를 해 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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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수 집필자 소개

고려대학교 동양사학과 졸업, 국립 델리 대학교에서 역사학 석사를 공부했다. 북인도 언어인 힌디어를 배워 인도인과 힌디어로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다. 델리에 있는 국립 네루 대학교에서 박사학위 논..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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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인도를 만나다
또 다른 인도를 만나다 | 저자공영수 | cp명평단문화사 도서 소개

인도는 수천 년 동안 갖가지 문화를 받아들이고, 흡수하고 발전시키며 세계 문화의 용광로 역할을 해왔다. 여러 얼굴을 가진 인도의 참모습은 어디까지일까? 인도 전문가가..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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